2부: 시간 인식의 창으로서의 언어(Language as a Window into Time Perception)
영화 컨택트에서 헵타포드의 시간은 마치 강물처럼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풍경처럼 모든 순간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헵타포드는 어떻게 이 비선형적인 시간적 현실에 접근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언어”이다.
영화 <컨택트> 에서 헵타포드의 외계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지각 도구이자 인지 운영 체계이며, 현실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을 열어주는 열쇠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언뜻 보기에는 환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언어학 및 인지과학 이론에서 직접 영감을 얻은 것이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는 당신의 사고방식을 형성할 수 있다.”
언어의 힘(The Power of Language)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에 대해 생각할 때, 언어를 도구, 즉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렌즈라면?
이것이 언어 상대성 이론으로도 알려진 사피어-워프 가설의 핵심 전제이다. 이 가설은 언어의 구조가 화자의 세계관이나 인지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이 가설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 고 하는 강한 워프주의 해석,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끼친다.” 고 하는 약한 워프주의 해석.
강한 해석은 대체로 인기를 잃었지만(인간은 보통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을 할 수 있음), 약한 해석은 점점 더 많은 경험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컨택트》의 세계에서 이 아이디어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단순히 그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시간적 존재론, 즉 시간 속의 다른 존재 방식을 구축한다.
시간이 없는 언어(A Language Without Time)
이 영화에서 외계 언어는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 문장이 순서대로 쓰이거나 말해지지 않는 비선형 구조
- 화자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전체 메시지를 알고 있는 동시 창작
- 문장은 복잡하고 완전한 표의문자로 그려지며, 모양과 위치가 의미를 인코딩하는 원형 문자
헵타포드 언어를 배우려면 단순히 어휘 암기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헵타포드처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루이스는 언어를 배우면서 그녀의 마음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미래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아닌 환상을 보기 시작하고,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놀라운 서사 기법이지만 동시에 대담한 인지 가설이기도 하다.
“언어는 생각뿐만 아니라 인식 자체도 재구성할 수 있다.”
현실 세계의 유사점(Real-World Parallels)
당신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지구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인간은 헵타포드처럼 시간을 경험하지 않지만, 언어가 시간, 공간, 심지어 인과관계를 개념화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시간적 은유는 언어마다 다르다
영어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미래는 앞에 있다.
- 우리는 과거를 돌아본다.
그러나, 안데스 산맥에서 사용되는 언어에서는 그 반대로 표현한다.
- 과거는 당신 앞에 있다 (당신이 볼 수 있기 때문).
- 미래는 당신 뒤에 있다 (미지수이기 때문).
독서 방향은 시간적 사고에 영향을 미칩니다
히브리어나 아랍어(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언어) 화자들은 시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른다고 생각하는 반면, 영어 화자들은 시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들이 타임라인을 구성하거나 도표를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언어의 공간적 배치가 시간적 추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문법적 시제와 경제적 행동
경제학자 키스 첸(Keith Chen)의 연구에 따르면, 미래 시제가 강한 언어(예: 영어: I will go )와 미래 시제가 약한 언어(예: 독일어: Ich gehe morgen — 직역하면 "나는 내일 간다")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그는 이 연구에서 미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얼마나 현실적으로 느껴지는지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언어가 단지 우리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형성한다는 더 광범위한 개념을 뒷받침한다.
컨택트의 언어 결정론(Linguistic Determinism in Arrival)
『컨택트』에서 사피르-워프 가설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를 가져오는 경험이다.
루이스는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낯선 사고방식을 흡수하고 그녀의 정신은 순차적인 시간의 경계를 넘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기억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이 포함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언어와 의식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다른 언어가 우리나 기계로 하여금 시간을 다르게 인식하게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 대한 함의(Implications for Artificial Intelligence)
언어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이 인식을 바꾼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인공지능에게 다른 종류의 언어를 제공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현재 AI 모델(GPT 등)은 순차적이고, 시간 제한적이며, 문법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 언어를 기반으로 훈련된다. 하지만 헵타포드를 모델로 한 기호 체계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을 훈련시킨다면 어떨까?
비선형 추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의사결정 ,그리고 역 인과 관계 시뮬레이션이 가능할 것이다.
아직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 컨택트는 언어 아키텍처가 인지 아키텍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것이 인공지능이 작업을 "경험"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인지가 언어적 형태에 의해 구성된다면, 새로운 형태를 설계하는 것이 새로운 종류의 정신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인지 기술로서의 언어(Language as a Cognitive Technology)
잠시 멈춰서 이러한 통찰력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자.
종종 언어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불리지만,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인지 기술이다. 글쓰기, 수학, 지도처럼 언어는 뇌의 범위를 확장한다. 언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저장
- 복잡한 지식 공유
- 윤리, 법률, 과학, 철학 체계 구축
-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기
《컨택트》에서 언어는 시간을 초월하는 문자 그대로의 수단이 된다. 인과 관계를 왜곡하는 표어문자로 글을 쓸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구조를 바꾼다면, 우리는 어떤 사고방식을 갖게 될까?
이건 단순한 공상과학이 아니라 인지과학, 인공지능, 그리고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이야기이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포털
<컨택트> 에서 루이스는 단순히 외국어를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인지의 새로운 창을 연다. 언어는 거울이 되어 다른 현실 모델을 반영한다. 하지만 동시에 창문이 되어 우리 역시 다르게 생각하고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외계인을 상상하든, 인공지능을 설계하든, 아니면 우리 자신의 한계를 숙고하든, 메시지는 분명하다.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려면, 먼저 시간에 대해 말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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